에필로그 (Epilogue) (收尾) (studio ver.)-김소연

[ti:에필로그 (Epilogue) (收尾) (studio ver.)] [ar:김소연] [al:오늘의 난 미지근하게 축제 (Studio ver.) (Friendhood) (今天的我 不温不火的庆典)] [by:] [offset:0] [00:00.00]에필로그 (Epilogue) (收尾) (studio ver.) - 김소연 [00:01.10]词：김소연 [00:01.28]어젯밤엔 커튼을 닫고 [00:03.66]불을 끄고 베개에 [00:04.88]머리를 대고 누웠을 때에 [00:06.41] [00:07.46]오늘 하루 참 좋았다 [00:08.87] [00:09.85]하고 빙그레 웃으며 잠이 들었다 [00:12.20] [00:13.40]깊고 달게 잠이 들었다 [00:15.15] [00:16.91]두번째 태풍이 지나가고 [00:18.55] [00:19.69]푸른 하늘 속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이 [00:22.02] [00:23.05]오늘 하루도 [00:23.66] [00:24.43]잘 지내라는듯이 떠있는 아침 [00:26.60] [00:28.63]나라는 사람은 [00:29.47] [00:30.26]어떻게 하루를 보냈을 때에 [00:31.89] [00:32.62]하루가 좋았다는 느낌이 드는지를 [00:35.02]헤아려보며 아침 커피를 마셨다 [00:37.95] [00:39.49]잘 지낸 건 어제지만 [00:41.02] [00:41.93]몸이 개운하고 [00:43.01]머리가 맑은 건 오늘이다 [00:44.70] [00:46.41]책을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한 채로 [00:48.68] [00:49.74]부산하게 지낸 하루는 못마땅하다 [00:51.97] [00:53.81]잠깐의 짬으로라도 [00:55.07] [00:55.95]두어 페이지라도 [00:56.99] [00:57.86]책을 읽고 머리에 맴도는 [00:59.94]질 좋은 문장을 마주친 하루가 좋다 [01:02.54] [01:04.68]어제는 몇 해 전에 [01:05.95]돌아가신 철학자 [01:07.50] [01:08.39]김진영 선생의 산문집 [01:10.09] [01:11.02]피아노를 펼쳐보았다 [01:13.38] [01:14.65]7쪽까지 읽고 잠시 책을 덮었다 [01:17.45] [01:19.05]내가 존경했던 [01:20.44]이들의 생몰 기록을 들추어 본다 [01:23.56] [01:24.78]그들이 거의 모두 지금 [01:26.76]나만큼 살고 생을 마감했다는 [01:29.68]사실을 발견한다 [01:30.88] [01:32.17]내 생각이 맞았다 [01:33.30] [01:34.49]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 [01:37.02] [01:39.57]이 문장 속에 사용된 단어 [01:41.72]하나하나가 귀하게 나에게 박혀왔다 [01:45.08] [01:46.72]존경했던이라는 말과 [01:48.98] [01:50.11]존경해온이라는 [01:52.30]말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[01:54.36] [01:56.88]누군가가 다시 찾은 존경심에 대하여 [01:59.63] [02:00.98]날이 개인 오늘 아침의 하늘처럼 [02:03.29] [02:04.29]새삼스레 무언가가 [02:05.61] [02:06.34]맑게 복원되는 순간에 대하여 [02:08.47] [02:10.32]이렇게 상기하게 되는 일들은 [02:12.05] [02:12.73]되찾는 것과 다름없다 [02:14.43] [02:16.29]저자가 되찾았을 존경심이 [02:18.49] [02:19.62]비 온 끝의 무지개처럼 [02:21.35] [02:22.02]담대히 한쪽 [02:24.06]하늘에 걸려 있는 것만 같았다 [02:26.41] [02:27.94]그리고 마지막 단어 [02:29.24] [02:30.44]누린 것이다라는 말이 [02:32.73]가장 짙게 감촉되었다 [02:34.53] [02:35.93]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 [02:38.09] [02:39.15]누렸다는 표현을 [02:40.45]과연 나도 쓸 수 있을지 가늠해본다 [02:43.32] [02:44.43]아직은 못 그럴 것 같았다 [02:46.26] [02:47.60]나에겐 생을 버텼다 [02:49.50] [02:50.51]혹은 생을 견뎠다같은 [02:53.52]좀더 아픈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[02:57.00] [02:59.73]나는 육체를 [03:00.78]많이 사용한 날을 좋아한다 [03:02.48] [03:03.51]세탁기에 집어넣을 수 없는 [03:05.28]빨래를 쪼그리고 앉아 [03:07.55]팔을 써서 벅벅 비벼본 날도 좋고 [03:10.46] [03:11.51]몸이 노곤노곤해질 만큼 [03:13.27] [03:13.86]오래 걸은 날도 좋다 [03:15.04] [03:16.20]땀을 뚝뚝 흘리며 [03:17.40] [03:18.23]베란다의 묵은때를 [03:19.60]말끔히 씻어내린 날도 좋고 [03:21.38] [03:22.35]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[03:23.88] [03:24.48]누군가와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[03:26.91] [03:27.61]운동을 하게 되는 날도 좋다 [03:29.29] [03:30.61]그럴 때는 햇볕 아래여야 한다 [03:33.04] [03:34.00]그늘 아래 드는 순간이 [03:35.60]소중해질 만큼의 [03:36.57] [03:37.64]땡볕 아래면 더 좋다 [03:39.31] [03:41.34]육체를 사용할 때에는 [03:42.66] [03:43.39]상념이나 걱정 같은 것을 [03:45.65]동반하지 않기 때문에 좋다 [03:47.41] [03:48.75]육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에만 [03:51.42]집중할 수 있는 무념이 좋다 [03:53.69] [03:54.93]무심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날이면 [03:56.89] [03:57.77]으레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[03:59.80] [04:00.69]오늘 시간 괜찮으면 [04:02.41]같이 배드민턴 칠래하고 [04:04.59] [04:05.10]물어보곤 한다 [04:05.79] [04:06.97]무심하기 위해 [04:07.66] [04:08.45]민첩한 방향전환을 [04:10.17]꾀하는 실천력을 나는 좋아한다 [04:12.57] [04:14.61]파 한 단이나 [04:15.60]양파 한 망을사와서 [04:16.96] [04:17.58]식재료를 손질하고 소분해서 [04:19.46] [04:20.06]잘 보관해두는 일을 좋아한다 [04:21.91] [04:23.05]내일과 모레 [04:23.67] [04:24.55]앞으로의 날들을 위해 [04:25.81] [04:26.40]작은 노동을 미리 해두는 [04:28.18]기쁨이 있어서 좋아한다 [04:29.37] [04:30.62]한참 잊고 지낸 이에게 [04:32.30] [04:33.08]안부를 묻기 위해 [04:34.32]전화를 걸어보는 일을 좋아한다 [04:36.15] [04:37.21]그냥 걸었어라고 말하면서 [04:39.43] [04:40.25]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[04:41.62] [04:42.34]걱정을 나누고 응원을 보내며 [04:44.63] [04:45.43]저쪽의 목소리와 [04:46.95]호응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[04:48.57] [04:49.70]미뤄두었던 일 하나를 [04:51.53] [04:52.05]소박하게 해치우는 것도 좋아한다 [04:54.33] [04:56.32]창틀의 먼지와 [04:57.73]유리창의 얼룩을 지운다거나 [04:59.26] [05:00.14]창고정리를 하면서 [05:01.48] [05:02.23]안 쓰는 물건을 버리는 걸 좋아한다 [05:04.18] [05:07.07]어제는 유효기간이 [05:08.33]지난 알약과 연고 [05:09.80] [05:10.42]그리고 모아둔 몇 개의 아이스팩 [05:12.55] [05:13.20]폐건전지와 고장난 [05:15.26]소형가전 한 개를 들고 [05:16.73] [05:17.55]주민센터에 갔다 [05:18.72] [05:19.84]주민센터 입구에 [05:21.13]마련된 분리수거함에 [05:23.21]버릴 것을 버리고 돌아서면 [05:25.03] [05:25.89]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은 한껏 상쾌하다 [05:28.64] [05:29.77]어제는 해가 질 때까지 [05:31.40] [05:31.94]이 좋아하는 일들을 [05:33.42]차례차례 행하면서 지냈다 [05:35.14] [05:36.27]잠이 들 때까지 [05:37.23] [05:38.04]읽고 쓰는 일을 했다 [05:39.44] [05:40.49]오늘도 어제처럼 [05:41.67]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[05:43.12] [05:44.11]생을 누렸다라는 표현이 [05:46.11]내 자신을 표현하는 [05:48.18]가장 정확한 말이 [05:49.40]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